말하지 않는 것은 모를 수밖에 없다

말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주제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네요. 하지만 아무리 숟가락에 밥을 한가득 담아도 그 한술에 배가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며, 읽는 분들의 피로감이나 이후로도 쓰게 될 글을 생각하면 딱 하나의 이야기만 꺼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전에 쓴 글과 이어지는 부분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부터 도망치지 말되, 괴로움이라는 감정이 나 자신을 흐트러뜨리는 일은 없게 하자고 글을 맺었죠. 그리고 제가 살아오면서 봐온 공동체에 속한 수많은 인간 개체를 관찰한 데이터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거나, 말했음에도 상대가 잘못 이해하는 경우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그건 저 또한 예외가 아니고요. 그러니 늘 정확하게 말하고자 하는 거예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적지 않은 사람이 정확하게 말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말 한 마디 잘못 해서 괴로웠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지난 수필을 쓰기 이전에도 쓴 이후로도 그러한 경험과 관련된, 적잖은 분들의 괴로움 가득한 고백을 여러 차례 보았던 고로 오늘의 주제를 이렇게 굳히게 되었습니다. 제목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은 모를 수밖에 없다'. 

제게는 이 주제와 관련된 경험이 여럿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한 가지 일화를 꼽자면 이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가사가 포함된 노래를 아시나요? 들어보신 분도 계실 테고 아닌 분도 계실 겁니다. 아, 2021년에 나온 수지의 노래가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건 오리온 초코파이 광고 CM송입니다. 1989년에 나온 노래예요. 어쩌면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서 그때 태어나지도 않은 분들이 제법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쨌든, 저는 그 CM송을 처음 들었을 때 생각했습니다.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지? 저도 어렸을 때 이 노래를 처음 접했던 까닭에 그때는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기억에 남은 것을 몇 번이나 되새기는 버릇이 있었기에,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 질문은 점점 심오해졌습니다.

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는 편이 읽으시는 분들께서 이해가 좀 더 편해지실 거라, 그것부터 명확히 하고 가겠습니다. 저는 객관화한 시점으로 나타내자면 '말한다'라는 행위는 '표현'으로, '모른다'라는 행위는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음'으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그럼, 오늘의 이야기. 본격적으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의 제목을 해설하자면 이러합니다. '표현하지 않는 것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더 쉽게 말하자면, '표현하지 않으면 실천할 수 없다'입니다. 주어 어디 갔냐고요? 뭘 넣어도 답이 될 겁니다. 목적어도 맥락만 맞으면 뭘 넣어도 그럴 거고요.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스스로 실천할 수 없다.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남이 나에 대한 배려를 실천할 수 없다.

남이 표현하지 않는 것은 실천할 수 없는 것이다.

남이 표현하지 않으면 내가 남에 대한 배려를 실천할 수 없다.


… 이외에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만 큰 의미는 없으니 생략하겠습니다.

어쨌든, 본론은 그겁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언어만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죠. 눈빛, 얼굴을 비롯한 신체의 근육으로 드러나는 표정이나 몸짓과 같은 것들, 몸가짐, 자세나 행동 등. 짐승도 귀를 눕히거나 꼬리를 흔들거나 몸을 웅크리거나 뻗거나 바라보는 식으로 제 의사를 표시하는데 인간이라고 그러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인간은 문자라는 아주 특별한 의사소통 수단이 있고, 그로 인해 정교해진 사고와 표현, 그리고 그것의 전승으로 인해 아주 빠른 속도로 문명화(文明化.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 - 「표준국어대사전」 中)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문명화의 文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은 바로 이해하셨을 것 같네요.

 글 문文. 글이 있었기에, 어려운 내용을 정확히 기록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기에 이 모든 발전이 가능했습니다. 그 발전이 긍정적인 것이었는지는 저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니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하여간 말이 있고 그 뒤에 글이 있었기에 정확한 소통이 가능해졌다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나 특별하고도 효율적이며, 효과적이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언어라는 수단은 점점 그 빛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간단해요. 이 세상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 일들은 기록되어 퍼져나감과 동시에 우리를 가차없이 휩쓸어버립니다. 그러니 우리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는 보지도 않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조차도 혼자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판국이니 짧게 요약된 글만 읽으려 하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쉽게 요약된 글들만을 접하다 보니 언어 능력은 결국 저열해지기 쉬워집니다. 젊은이들의 어휘력을 비롯한 청년층의 전반적인 언어 능력 문제가 꾸준히 도마 위에 올라오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한국어에서 결코 비중이 적지 않은 한자어 공부도, 그것을 이루는 한자에 대한 학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요.

글이 좀 날카로워졌죠? 한때 국어 가르쳤던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기본적인 한자를 모르는 학생들이 꽤 되더라고요. 학교나 모의고사 성적과는 상관없이요. 뭐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살짝 분위기를 환기해 보자면― 라떼는 말입니다. 초등학생 때 한자 4~5급 따는 애들이 쌔고 쌨어요. 중고등학생 때 1~3급을 따는 학생들도 꾸준히 있었고요. 저는 암기가 버거웠고 천천히 꾸준히 반복해서 익혀 외우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중학생 때 4급 따고 때려치웠지만요.

아무튼 그런 사회적 배경 때문에 말하기와 쓰기에 서툰 이들이 적잖지만, 그 속에서도 언어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나마 인지하고 바쁜 시간 쪼개는 식으로 꾸준히 공부해서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도 어느 정도 있기는 해요.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말과 글의 중요성은 대체로 표현 수단으로서 지니는 효용으로 성립됩니다. 효과적인 표현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거예요. 고로 저것만으로 먹고살기란 참 어렵죠. 쉽게 말하면 능력을 어필하는 능력이랄까요.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말 잘하고 글 잘 써도 맹탕이니까요.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로 언어를 구사할 줄 알면 웬만한 영역에서 한 사람 몫은 하지만요.

그리고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이 글이 뱅뱅 돌아가면서도 주제와 관련된 맥락을 벗어나지 않고 이어진다는 걸 아시는 분은 이 글의 구조나 저라는 사람을 아주 잘 이해하고 계신 겁니다. 언어는 그 사람의 세계를 나타낸다고 하죠. 저는 시야를 계속 넓히려 했을 뿐더러, 근거 없이 말하는 일을 피해가는 사람이에요. 그렇다 보니 제 눈에 보인, 현실을 바탕으로 한 맥락을 엮어서 말하다 보면 다른 분들이 예상하는 범위를 넘어가는 경우가 꽤 잦아 보였어요. 다시 말해, 이제는 이 글의 핵심으로 돌아갈 때가 됐으며, 글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입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이제는 다들 이 말뜻을 이해하셨을 거라 생각해요.

서툴러도 표현하세요. 부족함과 실패는 두려워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아닙니다. 계속 표현하다 보면 더 정확한 어휘를 쓰고자 자연스럽게 사전을 찾게 될 것이고, 사전을 계속 찾다 보면 어휘력을 비롯한 다양한 소통 역량을 키울 수 있게 될 겁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분량도 다소 길고, 이해하기 버거운 글이었을 수도 있을 텐데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주말 이틀 내내 약속이 잡혀서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일찍 글을 올렸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고 오겠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서도 부디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