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우리는 어디까지라도 살아가야만 한다

언젠가는 절망하게 될 것이기에. 하지만, 그 절망 또한 끝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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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우리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그 사태가 일어난 날로부터 어느새 한 달도 더 되는 날들이 훌쩍 흘러갔습니다.

저는 바라던 직군으로의 이직에 성공했고, 곧 새 직장에 첫 출근을 합니다. 그 사태를 해결하는 데 아주 앞장 선 사람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힘을 보탠 사람임에도 이런 평범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결국 저 또한 한 사람의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삼인성호라는 말도 있죠.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냅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과 동조한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잊지 않고, 언제라도 힘을 합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들은 결국 목표를 이루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때에 놓였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변화를 직면하는 판국에 놓일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저는 이전처럼 적극적으로 글을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의 관심도 수그러들기에, 이전처럼 제 글이 수백 번 공유가 되는 상황도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간단합니다. 이 상황을, 여태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잊지 않는 것.

모든 사람에게는 망각이라는, 축복이자 저주와도 같은 재능이 있습니다. 이것은 본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재능이었습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공동체적으로 유대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공동의 목표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는, 나태라는 죄악의 씨앗이기도 합니다.

림버스 컴퍼니를 좋아했고, 어쩌면 아직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여러분께 익숙할 칠죄종 중 하나죠. 분노, 색욕, 나태, 탐욕(탐식), 인색(우울), 교만(오만), 질투. 인색이 우울과 이어지는 이유는, '자신에게만 집중하여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 상태'라는 맥락을 공유하기 때문임을 설명드리고 넘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혹시 눈치 채셨나요?

그렇습니다. 저것들은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 살기에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나 행위입니다. 본능과도 이어져 있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며, 인간은 때로 본능과 투쟁해야 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닌, 괴롭히는 것을 마주하고 그것을 물러나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우리가 아직 기억하고 있는 '그 사건'을 잊지 않는 행위로부터 출발합니다.

하지만 잊지 않는다는 것이 시종일관 분노하거나, 슬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씁쓸해하는 등 감정에 휩쓸려야 한다거나, 그 사건이나 그것의 원인 제공자를 계속 비꼬거나 비아냥거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잊지 않으면 됩니다. 자신의 감정에 자신이 휩쓸리지 않는 선에서. 떠올려야 한다는 것을 아예 잊어버리지 않을 선에서. 자신의 삶이 흐트러지지 않을 선에서. 대외적으로도 대내적으로도 셀 수 없이 흔들리고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일상이 그 위태로움과 혼란에 묻히거나 지워지지 않을 선에서.

부족하나마 이 자리를 빌려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짐하겠습니다.

저 또한 제가 한 이야기를 잊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