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 내용 요약
버스터미널 겨우 찾아서 버스 탐-빗길을 뚫고 걸어서 호텔 도착-짐 내려놓고 또 비를 뚫고 이온몰 가서 없는 누오 빵 대신 다른 포켓몬 빵 사옴-히로메시장 가서 가츠오타다끼 먹음-근처 미레 비스킷 숍에서 누오 비스킷 발견해서 사옴
2월의 오전 6시는 어둑어둑하다. 그야 당연하지. 해가 안 뜰 시간인데. 전날 감고 잔 머리는 빗질을 안 했더니 소가 핥은 것마냥 삐죽하니 삐져나와 있었다. 머리를 한 번 더 감고 빗질하고 깔끔하게 챙겨입고 처음으로 한 일은
밥 챙기기였다. 한국인은 밥심이니까. 호텔에서 아침 6시 반부터 조식을 제공하는 덕에, 일어나는 대로 든든히 먹고 밖으로 나갈 계획이었다. 배차 간격도 이동 시간도 모두 길어서 언제 점심을 먹을 수 있을지 몰랐던 것도 있었다.
<조식 뷔페>
조식은 무료 옵션이었는데 굉장히 훌륭했다. 지금 사진 보니 또 먹고 싶다, 허허. 3일간 매일 조금씩 메뉴가 달라진다는 것도 놀라웠다. 무료인데?
그렇게 식판에 채운 음식을 두 번 연거푸 비우고 나니 배가 빵빵해졌다. 적게 먹는 편은 아닌데, 보기보다 식판이 음식이 많이 담기는 편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누오의, 누오를 위한, 누오에 의한 여행 본격적으로 시작. 우리 애로 빵빵해진 배낭을 메고, 조식으로 빵빵해진 배와 기대로 부푼 가슴을 품고 카메라를 챙겨 고치역으로 향했다. 흐렸던 어제와는 달리 잘 다녀오라는 듯, 하늘은 그야말로 화창 그 자체였다.
<니코부치? 가는 길>
일본의 전철은 한국과는 내부 디자인이 많이 달랐다. 한국 지하철처럼 가로로 긴 좌석도 있었지만, 마주보는 좌석도 반대편에 있었다. 외국에서 전철을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서, 내릴 곳을 놓칠세라 방송에 귀를 기울인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날의 목적지는 바로 니요도강의 최상류에 자리잡은 용천인 니코부치였다. 일본에서 가장 맑고 깨끗할 뿐더러, 니요도 블루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특유한 푸른 빛깔을 자랑하는 청류. 그 강의 발원지에서 비치는 물빛은 어떤 느낌일지 꼭 보고 싶어서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일찌감치 점찍은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최고의 청류를 보러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사실 운전 면허가 있었다면 좀 더 만만했겠지.
1. 고치역에서 전철을 타고 이노역으로 이동. (현 시점 완료)
2. 이노역 인근 버스정류소에서 1시간에 1대가 올락말락하는 버스에 탑승.
3. 그 뒤 1시간 정도 이동해 버스에서 내린 후 20분 정도 산행.
가는 데만 최소 2시간 정도가 걸리며, 중간에 일이 꼬여 시간이 늦어지면 막차를 놓칠 수도 있는 정도의 교통 조건. 무슨 막차가 5시야 누오.
어쨌든 그 모든 여정을 감수하기로 한 건 나였기에, 나는 이노역 근처 정류소(이노에키마에=이노역앞)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1시간이 넘도록. 정류소 찾는다고 헤매는 사이에 버스가 오는 시간을 놓쳤거든. 후후... 젠장.
솔직히 좀 흉물스러운 표지판만 하나 있는데 외국에서 온 관광객은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지 않나. 아, 보통 차 렌트하지. 면허가 없는 내 탓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갖고 온 책으로 추위를 달래며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자니, 시간에 딱 맞춰 버스 한 대가 왔다. 니코부치에 드디어 가는구나, 앗싸. 하고 버스에 올랐는데
같은 시간에 오는 다른 버스였다. 젠장!!! 그걸 알아챈 것은 버스에 오른 지 15분 정도가 지난 뒤였다. 지금이라도 내려야겠다 싶어서 급히 요금을 내고 내렸다.
워메 여기가 어디여. 구글 맵을 켜보니 아까의 정류소까지 가려면 걸어서 1시간 40분이 걸렸다. 다음 버스는 1시간 10분쯤 뒤에 오며, 여기에서 이노에키마에까지 가는 버스도 1시간쯤 뒤에 오는데. 젠장~!
일단 이동 시간을 최대한 줄여서 니코부치 근처로 가는 다음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작정 걸었다. 글로 쓰니 담담해 보이지만, 또 버스를 놓칠까 봐 잰걸음으로 있는 힘껏 걸었다. 그렇게 4~50분쯤 걸었을까? 한 정류소에 멈춰서 곧 올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다행히 이노역앞 정류소로 늦지 않게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정류소에 도착하기 직전, 나는 내가 탈 버스가 조금 늦게 온다는 사실에 쾌재를 불렀다. 앗싸. 안 놓친다. 드디어 니요도 블루를 보러 가는구나.
<진짜 니코부치 가는 길>
그런데 버스를 타고 30분쯤 지난 후, 드문드문 보이던 지류에서 니요도 블루의 편린을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던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다시 직면했다. 산길을 쿨렁쿨렁 오르던 버스가 갑자기 차고지로 이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기사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어? 오늘 이 차는 여기까지만 운행하니 내려서 알아서 갈 길 가라는 건가? 머리로 이미 드라마 쪽대본 한 장을 써낸 지 오래였다.
다행히 버리고 가는 건 아니고, 기사님들끼리 교대하는 시간대였다. 교대한 기사님께서 버스를 다시 운행하기 시작했고, 이삼십 분 정도가 지나 정류소에 내리자 니코부치 가는 길은 이쪽이고(갈림길이 있었다)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어주셨다. 친절하신 분. 덕분에 힘을 내서 니코부치로 향했다.
길은 오르막이었지만 그렇게 경사가 험하지 않아서 갈 만했다. 다만 산이어서 추웠고, 바람이 불어서 추웠고, 화장실을 몇 시간째 못 가서 소변이 좀 급했던 게 문제였다. 그리고 아무리 걸어도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이 나이 먹고 바지에 실례하는 흑역사를 새로이 갱신할 위기에 놓인 나는 슬슬 진짜 한계다 싶었던 순간, 30미터쯤 바깥에 있는 화장실스러운 목조건물을 발견했다. 그리고 가능한 한 가장 빠른 속력으로 뛰었다. 저게 화장실이 아니면 나는 시방 끝장이다. 그 일념만으로.
다행히 그곳은 화장실이 맞았다. 화장실이 아니었거나,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화장실이 있는 걸 보니 니코부치까지는 얼마 안 남았군. 그 예감대로 나는 조금 더 걸어 올라가자 니코부치로 직접 내려가는 길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곳은 공사중이었다. 공사장 관계자 한 분이 절~루 위로 가서 절~루 아래로 꺾어 내려가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이미 20분 정도의 산행을 한 나는 그렇게 살짝 헉헉대면서(여기는 경사가 좀 많이 험했다) 길을 올랐다. 굴러떨어지면 끝장인 게 확실한 철제 계단까지 기어가듯 내려간 끝에 드디어 니코부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먼 곳에서 언뜻 보이는 니코부치의 모습과 끝없는 계단. 보기보다 경사가 험하고 짐이 좀 많았어서 조심조심 내려갔다.
사진 속의 니요도 블루도 물론 너무 아름다웠지만, 나는 그래도 사진을 좀 만져본 경험이 있어서 보정을 거치지 않은 사진은 실물을 구현하기 힘들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과연 보정된 사진 속 니요도 블루와 실제 눈으로 보는 니요도 블루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내 주관적인 감상으로는, 극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지만 실물이 역시 훨씬 나았다. 사진은 긴긴 시간 중 어느 한 순간만을 남긴 거지만, 이곳은 그 모든 시간이 담긴 살아 움직이는 자연이니까.
그렇게 물빛과 어우러진 풍경을 찬찬히 감상한 뒤 나는 내가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카메라에 잘라내 담았다.
그런데 갑자기 벌어진 옆구리 틈새를 타고 빠져나오는 누오. 안 돼!!!
첨벙.
누오가 내 옆구리에서 빠져나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지 1초도 지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까지도 눈이 휘둥그레지고 시간이 열 배로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던 순간 내 머리를 급격히 식혀준 그 소리.
나는 도랑에 빠진 누오를 황급히 건졌다. 다행히 얕은 곳이어서 그렇게 많이 젖지 않았고, 극세사 담요가 있어서 물기를 얼추 털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물기를 대강 수습한 뒤 이런 기행도 벌였다.
내가 찍었지만 웃기고 귀엽고 하찮고 너무 좋다.
그래서 누오를 물에 빠뜨린 건 놀랄 만한 일이기도 했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예상했든 그렇지 않든 좋은 추억이 되니까.
누오가 머금은 물기를 짜내고 가방에 챙겼던 극세사 담요로 털어서 돌돌 감아준 뒤 말릴 겸 가방에 걸치듯 싣고 내려왔는데, 지퍼가 워낙 부드럽게 열리는 가방이었던 탓에 누오가 가방에서 탈출하는 사고가 있어 그냥 품에 끼고 정류소로 향했다.
아들아 바깥바람이 쐬고 싶다면 아부지한테 말하려무나. (ㅎ)
그래서 이날의 관광은 여기까지냐면, 그렇진 않다. 이후에 간 곳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이 여행도 고작 한 달 전 일인데 며칠 전에 또 고치를 다녀와서 주말에 글을 못 올린 게 좀 웃기네요 머슥. 여행기 말고도 쓰고 싶은 게 늘었는데 차근차근 써서 올려두려구요. 어차피 읽을 사람만 읽을겨 홀홀. ^^
그럼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