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오의, 누오를 위한, 누오에 의한 여행 - 준비편

여행을 가게 된 동기, 나름 철저했던 준비, 그러나 순탄치 않은 시작...!?


여행의 동기는 사소한 것에서 찾아온다.

그대가 누오를 들여다보면 누오도 그대를 누옹.

눈은 점만한 주제에 보는 사람을 그 안에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도롱뇽 포켓몬.

내 경우에는 그런 누오의 존재가 여행의 동기였다.

물론 원문은 수어 포켓몬이라는 거 알지만 이 글을 보고 계실 분들은 모두 누오가 도롱뇽이라는 거 아실 테니까 그러려니 합시다. (초장부터 막나가는 사회성 빵점 오타쿠)

사실 촉촉한 최애의 보디와는 정반대로, 나는 약간의 안구 건조증 때문에 메마르기 일쑤인 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그 때문에 딱히 불편을 겪은 적은 없다. 현생이란 이름의 인공눈물이 참말로 성실하게 내 눈을 적셔줬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에 누오를 만났다. 사실 치였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누오와 마주친 시점에 그를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이전에도 나름 소소한 애정을 느꼈으니까. 예닐곱 살 때 뜯은 포켓몬 빵에서 이름이 표시되지 않고 ?로 나온 누오를 본 기억도 선명할 정도로. (무인편 애니가 2기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포켓몬 빵에서 2세대부터의 포켓몬은 디자인만 공개되고, 151마리의 1세대 포켓몬만이 이름이 나왔다. 2세대에 베이비 포켓몬으로 추가된 마그비도 그렇게 처음 마주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이 드니, 쓸 곳 없이 방치되어 어항 속 모래알마냥 소박하고도 소복하게 쌓인 용돈으로 누오 굿즈를 하나둘씩 지르는 것이 내 유일한 취미가 되어 있었다. 아, 유이한 취미다. 시간이 나는 날엔 포스냅으로 누오를 스토킹하기도 했으니.

그리고 정말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때마침 시코쿠의 고치에서 누오가 공식 홍보대사 포켓몬으로 위촉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참말이오?

참말이었다. 아 다시 봐도 인형탈 누오쨩 초 카와이.

여하튼, 그리고, 앞으로 1년 정도는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될 거라는, 이쪽 분야에 빠삭한 지인분의 말에 고치에 못해도 한 번은 가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마침 재작년에 발급해놓고 한 번도 안 쓴 새것같은 여권도 있겠다.

하지만 누오가 홍보대사가 된 것이 11월이라는 걸 생각하면, 연말연시는 솔직히 행사하기엔 별로인 시기였다. 날도 슬슬 추워지고, 11월쯤이면 이미 주머니에 돈 좀 있는 양반들은 연말 일정도 슬슬 나올 때였다. 게다가 솔직히 고치가 오가기 편한 곳도 아니지 않나. 본토랑 해외 전부 다.

한국에서는 공항이 있는 마츠야마와 타카마츠. 어느 쪽이든 고치에 가려면 산세가 짙은 지역을 가로질러야 한다.

운전면허도 없는 주제에 첫 해외여행을 이런 교통 벽지로, 그것도 혼자 간다고 하면, 음. 상식 선에선 미친짓이다.

하지만 난 원래 미친짓에 익숙하지. tmi지만 늘상 미친짓을 해서는 아니고, 미친짓을 잘 기억하는 쪽에 가깝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 내가 기억할 수밖에. 까먹으면 미친짓에 삽질까지 흑역사를 갱신하는 꼴이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그래서 연말연시가 지난 후 비수기에 걸치는 2월에 여행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1월의 긴 설 연휴를 이용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면

비행기 푯값이 몹시 비쌌다. 잇츠 투 익스펜시브, 네단가 쵸 타카이데쓰.

게다가 12월에 표를 구하려 해도 직항이 없어서 가는 데만 십수 시간이 걸린다.

거기에 한술 더 떠 시국 때문에 급등하는 환율.


12월의 그날 이후로 폭등했던 환율. 지금도 일본이 금리를 인상할 조짐이 보여 다시 오르고 있는 게 보인다. 그만 올라. 나 직구도 가끔 한단 말이다.

어쨌든 나는 비싼 값 치르며 해외여행을 다녀올 정도의 돈까지는 없었다. 연말정산으로 돌려받는 환급금과 연말 인센티브, 그간 모아둔 용돈이 아니었으면 한동안은 밥에 얹어먹을 계란도 아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을 거다.

덧붙여 이 시점에서 살짝 고백하자면, 비수기 시즌의 3박 4일이었고 교통비를 빼면 큰 돈을 쓴 적은 딱히 없는데도 나는 여행에서 80만원 정도를 썼다. 솔직히 꽤 큰 지출이다. 스위치2가 40만원대로 나와도 두 개를 지를 수 있는 돈인데.

그런 이유로 2월에 여행 일정을 잡은 나는, 12월과 1월에 누오가 이곳저곳을 방문해 사람들과 대면하는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고 조금 부럽기도 했다. 사실 눈에 찬 습기에 안구 건조증이 완치될 정도로 부러웠다. 으헝헝 나도 실물 사이즈 누오랑 악수. 그 때문에 2월 중에도 한 번은 저런 이벤트를 하겠구나 확신이 서기도 했지만. 

그 뒤, 여행 가기 전까지 회사와 현생이라는 ㅎㅅ을 돌림자로 쓰는 두 형제(웬수의 유의어) 같은 존재에 치이고 치인 끝에 여행 9일 전이 되었다.

그런데 왜 열흘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애매한 9일이냐고 하면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안녕하세요~ 백경입니다. 포켓몬 계정을 이소라는 닉으로 따로 팠었는데, 이렇게 타이피에 백업하게 돼서 닉을 싹 통일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이렇게 좀 어중간한 데서 끊어갈 거예요.

그, 제가 다른 분들 괴롭히는 성미라서는 아니고요.

들른 곳이 적지 않은 데다 100%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선으로 여행을 했기 때문에 겪은 일들이 꽤 많거든요. 그리고 이번 글에서 보셨다시피 생각도 꽤 섞어서 글을 남기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 단위로 끊는 여행기 스타일을 따라가면 포스팅 분량이 5~6천 자 정도 나오는데요. (이미 현 시점 글은 3일차, 70퍼쯤 나왔고 쓴 내용을 읽기 편하게 다듬는 중이라 텍스트 분량 추정이 가능합니다) 

솔직히 여행기 기준으로는 긴 편이죠. 게다가 이 분량에 사건이 네댓 개씩 들어가고 감상도 따라붙으면 읽는 분들이 피로감을 느끼기 쉬울 거예요.

그래서 재미도 호기심도 유발할 겸, 읽는 분들 피로도도 줄일 겸 이렇게 적당한 분량에서 끊어가기로 했습니다. 가독성 개선 때문에 중간에 형식이 한 번 바뀌기도 할 예정이구요. 물론 여행기 본편은 이번 편보다는 길지만요.

그럼 이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 누오만 보고 출발한 김백경의 얼렁뚱땅 첫 해외여행을 기대해 주세요 :D